Monday, February 4, 2013

뉴욕일보 12-15-2010


좌초위기 KCCNY호(號) 구한 일등공신 배희남 이사장 
사재 10만불 쏟아부어 내부공사 마무리

좌초 일보 직전의 ‘KCCNY(뉴욕한인커뮤니티센터)호(號)’를 구한 일등공신 배희남 이사장(사진). 배 이사장은 동포들의 피땀으로 일군 센터 건물을 되살리기 위해 사재 10만 달러 이상을 쏟아 부었다. 이 돈은 센터 건물의 내부수리에 고스란히 쓰여졌다. 이외에도 그는 9만여 달러를 건물 매입기금 및 월 모기지 페이먼트로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자신 소유의 건물을 수리할 때에도 업자에게 전적으로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센터 건물 내부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지금까지 손수 모든 자재를 직접 고르고 운반했다.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돼지 저금통을 쪼갠 어린이들의 돈에서부터 난파선이나 다름없는 센터 건물을 되살리는 데 보태 쓰라며 노후에 생계의 젖줄인 소셜 시큐리티 체크를 보내온 노인, 센터 매입기금으로 거금을 내놓고도 위기에 처하자 선뜻 1만 달러를 재차 기부한 부부, 그를 끌어들이고 14만여 달러나 기부한 최영태·최수지 부부 등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그는 지난 2003년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번듯한 커뮤니티를 세우자는 의견에 뜻을 같이해 센터 추진공동위원장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센터 건물은 2005년 115만 달러에 구입했다. 50만 달러를 다운페이하고 65만 달러의 은행 모기지가 남았었다. 월 모기지 페이먼트는 5000달러 가까이 된다. 그는 이 건물이 커뮤니티센터 용도로는 맞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부지만 보고 구입한 건물이었다.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려 했다는 것이다. 주거용으로 1패밀리 렌트만 가능한 센터 건물은 도무지 손익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는가 하면 교회와 보험사, 한인록 업체, 컴퓨터 티칭 업체에 불법으로 렌트하는 등의 악수를 뒀다. 부동산 매니지먼트 전문가로서 극구 만류했지만 허사였다. 손을 떼고 나왔지만 ‘영구이사’라서 가끔 이사회에 얼굴만 내비쳤다. 동포사회 희망의 빛이던 센터 건물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자 다툼이 잦았다.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거듭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모기지 페이먼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사들은 속속 떠났다. KCCNY호(號)의 출항 당시 그 많던 40여명의 이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현재 남은 이사는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다. 서운하지는 않다고 했다. 어차피 그들 모두 개인적인 욕심으로 뛰어든 것이 아니기에. 어설픈 상식으로 센터를 관리하겠다고 덤비는 문외한들이 상황을 악화시킨 주역이라는 그. 부동산 관리는 철저히 계획된 계산 아래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프로다운 지론이다.

그는 지난 2008년 뉴욕한인회관 공중권(air rights, 空中權) 매각 반대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한인회관 인근 건물의 공중권 매각 시세를 일일이 조사해 한인회관 공중권을 매각하려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헐값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연히 한인회관 공중권 매각은 무산됐다. 자신의 부동산 매니지먼트 노하우를 바탕으로 회관관리위원장까지 지낸 게 밑거름이 됐다.

센터는 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할 전문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월 모기지를 갚고도 얼마의 돈이 남는다. 최종 목표는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다. 번듯한 센터를 세워 1.5·2세들에게 한글 교육도 시키고 다용도 공회당으로 사용하는 초석만 다져지면 뒤로 물러나겠단다. 몇 사람의 힘으로 그 뜻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이는 별 의미가 없단다. 동포들 개미군단의 힘으로 이루어내야만 소중한 의미가 더욱 많이 내재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현재 부동산 투자교실을 운영하며 수강생들에게 연 100달러씩을 KCCNY에 회비 형식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그의 KCCNY 건물에 대한 진한 사랑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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